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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에세이 63

감. 곶감, 훌륭한 설치미술 작품이 되다.

감. 곶감, 훌륭한 설치미술 작품이 되다. 백양사를 향해 운전을 하다가 나는 눈에 확 띄게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도로가에 차를 세웠다. 도로를 따라 시골 가게들이 정겹게 몇 집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 깎은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옷을 벗은 감들은 노랑에 가까운 주황의 속살을 훤히 드러내놓고 있었다. 아냐 갈라치오(Anya Gallaccio)라는 이태리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여류 설치 미술가가 떠올랐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실제의 빨갛게 잘 익은 사과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나뭇가지에 걸쳐놓은 작품이 있고, 빨간 아프리카 민들레(Gebera)를 대형 발에다 수백수천 송이를 꽂아 벽에 ..

단상, 에세이 2023.11.10

I am very sorry

I am very sorry 외국에서 살 때는 남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출입문을 여닫을 때 뒤에 누군가 있다던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열고 그들이 출입할 수 있게 기다려주곤 했었다. 한국에 귀국해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 내 힘으로 문도 못 여닫는 불구자인 줄 아나 별꼴이야 정말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외국물 좀 먹어봤다고 티 내는 거야 뭐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나이 든 사람이 주책스럽게 작업이라도 거는 줄 아는지 눈치를 보며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행동으로 습관이 굳어졌다. 미국을 다시 여행하면서 출입문을 여닫을 때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었다. 무의식 중에 한국에서의 습..

단상, 에세이 2023.09.24

작은 애국심

​ ​ ​ ​ ​ 작은 애국심 ​ ​ ​ 여행을 하게 되면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숙소 문제이다.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여행할 경우, 장기간일 때는 민박이나 룸셰어를 하지만, 단기일 경우엔 되도록이면 비싼 호텔을 피한다. 잠시 잠만 잘뿐인데 별 다섯 짜리 면 뭐 하고, 네 개 짜려면 뭐 하나? 세 개나 두 개, 아니, 한 개짜리도 피곤한 몸을 회복시키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좋은 호텔에 묵고 비싼 요금을 지불하면, 왠지 돈을 도둑맞은 것처럼 아까운 생각에, 여행 내내 신경이 쓰여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차라리 절약한 그 돈으로 음식을 잘 먹고,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볼 경비로 전환하는 것이 천만번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물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게 ..

단상, 에세이 2023.09.20

체코 프라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미술관

체코 프라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미술관 노르웨이 오슬로에 간다거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면 반드시 방문해야 될 가까운 친척 집처럼 들리는 곳이 있다. 뭉크 미술관과 고흐 미술관이다.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 가도 그들의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태어나고 성장하고 작품 활동을 한 그들의 나라에서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료와 사용하던 물건들을 보며 진한 체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도시 보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많은 프라하지만, 나는 이 나라 출생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알폰스 무하 (1860-1939)작품들만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을 우선순위로 정하는 것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무하 미술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는 크지 않..

뉴욕, 더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 뮤지엄​

뉴욕, 더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 뮤지엄 ​ ​ ​ 더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분관으로써 맨해튼 최북단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드타운 펜실바니아 스테이션에서 출발한 M4 버스는 메디슨 애비뉴를 따라 한참 동안을 달리다가 센트럴 파크 북쪽 끝을 지나 콜롬비아 대학을 거쳐 브로드웨이를 따라 한 시간 이상이 걸려서야 나를 그곳에 데려다주었다. 지하철 1번 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면 시간이 단축되지만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맨해튼의 북쪽 풍경을 보고 싶어 선뜻 버스에 몸을 맡겼었는데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려 피곤하긴 했지만 새로운 풍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여서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위했다. 13세기 남 프랑스 수도원을 모델로 건축되었다는 건물은 그 자..

뉴욕의 지하철 역에서 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

뉴욕의 지하철 역에서 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 유니언 스퀘어에 가기 위하여 맨해튼 남쪽에 위치한 Bowling Green 역에서 4.5번 지하철을 기다릴 때 였다. 오후 1시쯤이었기 때문에 역에는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서 있거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플랫폼의 중간쯤으로 가서 걸음을 멈추고 타임스케줄을 알리는 전광판을 올려다 보았다. 8분 후에 4번이 도착한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역 안은 열기와 야릇한 냄새로 온몸을 불쾌하게 매달린다. 피곤할 텐데 어떡하죠. 자리가 없어서....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머리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플랫폼에 마련된 딱딱한 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50대의 흑인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에 나 이외는 ..

단상, 에세이 2023.07.12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나이가 들수록 건망증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누군가가 전화번호를 물으면 생각이 나지 않아 당황할 때가 있다. 요즘은 비밀번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스마트 폰을 열 때도 컴퓨터를 사용할 때도 현금 지급기를 사용할 때도 아파트 현관 문을 얄 때도 집 현관 문을 열 때도 내 작업실 문을 얄 때도 ...... 만약에 만약에 어느 날 문득 정전아 되듯 내 머릿속에 기억들이 갑자기 어두워지면 어쩌지?

단상, 에세이 2023.06.20

여유로움

여유로움 가야할 곳을 정하지 않아 잃을 길이 없어. 만나야 할 사람을 정하지 않아 혼자만의 시간으로 가득하고, 오라는 곳을 정하지 않아 서두를 필요없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며 주위를 바라보면 또 다른 세상이야. 맘껏 뽐내는 꽃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나무들의 속삭임에도 귀기울여. 잔디밭에 누워 잊고 살았던 하늘을 바라보며 눈에 남아있던 미움과 증오도 말끔히 씻어내지. 가끔은 창 넓은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으로 행복을 채우고. 추억을 불러모아 새김질하고 미래를 불러모아 꿈을 꾸기도 해.

단상, 에세이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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