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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

길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길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학생활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다. 전과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전공을 바꾸어 입학시험에 다시 도전하기도 한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장 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좁은 문을 뚫고 어렵게 취업한 직장을 채 1년이 안되어 사표를 던지기도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기대에 부풀어 가파른 산도 쉽게 뛰어넘을 것처럼 패기가 넘쳤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면 곳곳에서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깨달으며 흥미를 잃는다. 직장에 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것보다 더 싫어지고, 일터는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지옥으로 변한다. 이러한 일을 겪는 사람들..

단상, 에세이 2024.06.04

작은 애국심

​ ​ ​ ​ ​ 작은 애국심 ​ ​ ​ 여행을 하게 되면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숙소 문제이다.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여행할 경우, 장기간일 때는 민박이나 룸셰어를 하지만, 단기일 경우엔 되도록이면 비싼 호텔을 피한다. 잠시 잠만 잘뿐인데 별 다섯 짜리 면 뭐 하고, 네 개 짜려면 뭐 하나? 세 개나 두 개, 아니, 한 개짜리도 피곤한 몸을 회복시키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좋은 호텔에 묵고 비싼 요금을 지불하면, 왠지 돈을 도둑맞은 것처럼 아까운 생각에, 여행 내내 신경이 쓰여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차라리 절약한 그 돈으로 음식을 잘 먹고,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볼 경비로 전환하는 것이 천만번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물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게 ..

단상, 에세이 2023.09.20

로이 리히텐 슈타인 (Roy Lichtenstein), 행복한 눈물

Roy Lichtenstein, 행복한 눈물, oil and acrylic on canvas 로이 리히텐 슈타인 (Roy Lichtenstein), 행복한 눈물 만화네. 만화 한 컷을 그대로 옮겨놓았잖아. 이 작품은 글씨까지 그대로야. 이런 만화도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이런 만화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이런 그림 그린 사람도 예술가 맞나? 로이 리히텐 슈타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들을 주고받을 것 같다. 사람마다 따르는 운이 다르다. 뒤로 자빠져도 코등이 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엎어져도 돈더미 위인 사람이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만화 그림으로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얻었으니 말이다. Roy Lichtenstein, oil and ac..

미술작품 감상 2023.08.04

나비, 나비, 나비........ ,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믿음이 없는 자(Faithless), 캔버스에 나비와 가정용 광택안료(Butterflies and Household Gloss on Canvas) 2003년, 영국 런던의 사치 갤러리에서 데미안 허스트 작품을 감상할 때의 일이다. 벽에 걸린 작품 몇 점이 나의 넋을 빼앗았다. 그 오묘한 아름다움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찌 이토록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패턴을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탄성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놀라움에 벌어진 입은 쉽사리 닫히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고대 성당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쏟아져내리는 햇빛이 투과하여 만들어 낸 듯한 신비로움과 환상적인 아름..

미술작품 감상 2023.07.31

뉴욕의 냄새

뉴욕의 냄새 뉴욕의 냄새는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이런 질문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거대한 도시가 뿜어내는 다양한 냄새를 한 가지로 답하기에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 21세 이상의 성인에게 대마초 흡연이 합법화되면서 도시는 그 연기로 뒤덮었고, 지금은 뉴욕의 냄새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건 바로 대마초 연기 냄새라고. 맨해튼,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에 가면 대마초 연기 냄새에 취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심할 경우엔 내가 피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야릇한 냄새는 너무 역겨워 계속 미간을 찡그리게 만든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대마초는 맛이 좋은 것도 아니고, 향이 좋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몸에 좋은 성분이 함유된 것도 아닌데..

가 볼 만한 곳 2023.07.25

천경자, 다시 작업실에서 볼 수 있다면......(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천경자, 길레 언니, 1973 서울 시립 미술관, 천경자 기념관에서 천경자. 여인 천경자, 다시 작업실에서 볼 수 있다면......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천경자. 그녀는 작업실에 있었다. 붓. 물감(안료), 물감 접시, 화구들을 실내에 가득 늘어놓고서. 한쪽 팔을 의자에 의지하듯 올려놓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던 그림 몇 점이 바닥에 눕혀져 있거나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작업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한 손에 붓을 든 채 우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일까? 그러나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우리는 들을 수가 없다. 작업실에 있는 것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천경자는 지금 미국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2003년..

미술작품 감상 2023.07.17

외로움은 누가 달래주지?

배터리가 다 닿도록 켜 놓은 휴대폰이 잠만 자고 있을 때 외롭다. 목을 길게 빼고 밖을 내다보지만, 빈 거리만 가득 시야에 들어올 때 외롭다. 편지함이 텅 빈 채 녹슬어 가는 것을 볼 때 외롭다. 깜깜한 밤바다를 향해 떠나는 배를 볼 때 외롭다. 한적한 공원에 비어있는 벤치를 볼 때 외롭다. 누구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그 강도는 심해진다. 외로워 미치겠어! 외로워 못 살겠어! 모두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난 외롭지 않아! 아무리 소리쳐 봤자 틈으로 새어 드는 연기처럼 어느새 외로움은 온몸을 휘감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죽음 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고. 배우자가 옆에 있어도, 자식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외로움..

단상, 에세이 2023.06.08

리치먼드 파크(Richmond Park), 그리고 마음속에 그린 그림

리치먼드 파크(Richmond Park),그리고 마음속에 그린 그림 누구나 가슴에 커다란 캔버스 하나씩은 품고 산다. 거기에 멋진 추억이나 풍경을 아름답게 채우길 바라면서…… 리치먼드 파크, 그곳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도저히 걸어서는 이동할 수 없는광활함, 성인 여러 명이 손을 맞잡아야 닿을 수 있는 수 백 년을 넘겼을 고목들, 명을 다하고 새카맣게 변해버린 조형물 같은 고사 목들,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나는 사슴들. (옛날 왕실의 사슴 사냥터였다는 이 공원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슴들이 방목되고 있다.) 더욱이나 가꾸어지지 않은 원시적인 자연림, 끝간 데 없는 갈대 숲, 오리와 백조로 뒤덮인 호수들, 그런 것들은 유년을 보낸 나의 고향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고향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그곳이 좋아 ..

가 볼 만한 곳 2023.06.02

길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 위에 있었을까? 살아오면서 얼마나 다양한 길을 만났을까? 인생이란 끝없이 길을 만나고 걷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엄마의 손에 매달려 장터에 갈 때, 엄마의 따스함과 편안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손 놓지 않고 오래오래 걷고 싶었던 하얗게 빛나던 신작로. 산에 꼭꼭 숨은 뻐꾸기 노래에 신바람 나서 코흘리개 친구들과 바람개비 돌리며 내달리던 보리밭 길. 비 갠 후 문득 나타난 쌍무지개가 내 미래에 희망을 안겨주는 것 같아, 두 팔 벌려 가슴에 담으며 뛰어오르던 언덕길. 새벽 물안개 피어오르던 호수를 따라 한참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새파랗게 당당한 하늘과 마주한 뚝 길. 흐드러지게 만발한 야생화들이 산들바람에 간지러워 몸을 파르르 떨며 재잘거리는..

단상, 에세이 2023.04.22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따사한 햇살이 내 손등과 얼굴을 타고 노는 창가에 앉아 텅빈 거리를 망연히 바라보거나, 묵혀두었던 책을 여유롭게 펼칠 때 행복하다. 커피향이 두텁게 달라붙어 은은한 향이 넘실대는 카페에서, 아끼듯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머무르고 싶었던 지난 기억 속의 장소로 달려가 추억 여행을 할 때 행복하다. 바람이 등을 밀어 나를 데려다 놓은 곳.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낯선곳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 행복하다. 아무도 몰래 꼭꼭 숨어 꽃망울을 터뜨린 야생화를 찾아내어 새로운 보물처럼 얼굴 가까이 하고 바라볼 때 행복하다. 그러고 보면 삶의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제임스 오펜하임..

단상, 에세이 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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