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에세이

I am very sorry

두래박 2023. 9. 24. 07:30
728x90

 

 

 

 

 

 

 

 

 

 

 

 

 

 

 

 

 

 

I am very sorry



외국에서 살 때는 남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출입문을 여닫을 때 뒤에 누군가 있다던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열고 그들이 출입할 수 있게 기다려주곤 했었다.

한국에 귀국해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
내 힘으로 문도 못 여닫는 불구자인 줄 아나
별꼴이야  정말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외국물 좀 먹어봤다고 티 내는 거야 뭐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나이 든 사람이 주책스럽게 작업이라도 거는 줄 아는지 눈치를 보며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행동으로 습관이 굳어졌다.

미국을 다시 여행하면서 출입문을 여닫을 때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었다. 무의식 중에 한국에서의 습관이 나올까 봐서였다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밖으로 나갈 때였다.
문을 밀치고 그대로 놓아버렸다.
은연중에 한국에서의 습관이 나온 것이다.
순간 실수를 알아차리고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려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양손에 커피를 든 젊은 백인 여성이 어깨로 문을 밀치고 나와 있었다. 바로 내 등 뒤에 있었던 게 분명했다.

I am sorry.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를 했다.
여자는 That.s Ok라고 입으로 말했지만 표정은 뭐 이런 몰지각한 사람이 다 있어. 젠장 재수 더럽게 없네 하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뒤따라오던 여자는 내 과실로 뜨거운 커피를 뒤집어쓰는 참사를 빚을뻔했다.
그리되었으면 나는 죄책감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I am very very sorry.
나는 여자에게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했다.

 

 

 

 

 

 

 

 

 

 

 

 

728x90

'단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독대  (380) 2023.11.22
감. 곶감, 훌륭한 설치미술 작품이 되다.  (385) 2023.11.10
작은 애국심  (376) 2023.09.20
뉴욕의 지하철 역에서 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  (50) 2023.07.12
만약에, 만약에.....  (201)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