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에세이

길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두래박 2024. 6. 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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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대학생활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다. 전과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전공을 바꾸어 입학시험에 다시 도전하기도 한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장 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좁은 문을 뚫고 어렵게 취업한 직장을 채 1년이 안되어 사표를 던지기도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기대에 부풀어 가파른 산도 쉽게 뛰어넘을 것처럼 패기가 넘쳤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면 곳곳에서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깨달으며 흥미를 잃는다. 직장에 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것보다 더 싫어지고, 일터는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지옥으로 변한다.

이러한 일을 겪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부모가 등을 떠밀어 자신의 적성과 특기와는 동떨어진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자녀들을 무조건 명문 대학에 입학 시켜 놓고 보자는 일류 지향적인 사고방식과, 적성과는 관계없이 인기 학과로 자녀들의 등을 떠민 결과다.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들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미래에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고 명예와 부를 거머쥐고 꽃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가 자식의 앞날을 설계한 결과이다.

아내와 나 역시도 그런 오류를 범했다.
큰 딸애가 태어나자 장래를 우리가 설계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웅장한 홀 무대에 조명을 받으며 당당히 등장하는 우아한 드레스의 피아니스트 모습,
신들린 듯 하얀 건반 위에서 자유자재로 춤추는 두 손,
풍부한 표현력으로 창조해 내는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
연주가 끝난 후 관중들이 기립하여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막연히 딸애도 무대의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졌던 것이다.

딸애가 여섯 살이 되자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원래는 더 일찍 시작하려고 했지만
손가락 소근육이 발달이 덜된 상태라 건반을 연주하는데 무리라고 했다.
딸애는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실력 있는 선생을 섭외하여 집에서 레슨을 병행했다.

딸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피아노 치는 시간을 늘렸고, 학년이 바뀔 때마다 시간을 점점 확대해 나갔다.
딸애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고 집에 와서는 배운 시간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을 연습을 했다. 다음 시간에 배울 것을 예습도 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 지켜보며, 템포가 빗나가지 않게 박자를 맞춰주고, 악보를 넘겨주고 곡이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연습하게 하는 것을 반복하게 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밖에서 맘껏 뛰어놀아야 할 나이인데 이래도 되나 하는 자괴감과, 아이에 대한 연민이 깊어졌지만,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위로하며 그런 생각을 애써 잠재웠다.

일 년에 한 번씩 음악 학원에서는 정기 연주회를 가졌다. 조그만 공간에 참가자가 이십여 명이 되는 데도 마치 우리 딸애만의 독주회처럼 드레스를 사서 입히고, 분장을 예쁘게 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친인척과 지인을 초대하기도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딸애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딸애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면 대단한 피아니스트라도 된 양 우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봄이었다.
딸애는 피아노를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폭탄선언이었다.  5년 가까이 공들인 탑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들인 돈, 시간, 아이의 노력이 아까웠다.
“피아노 하기 싫은 이유가 뭐 야?” 아이에게 물었다.
“재미없어. 그냥 하기 싫어. ” 이 말을 하고는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내와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으려고, 아니면 꾸중을 들을까 봐 속으로 애태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딸애의 예기치 않았던 선언에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고,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하니 용기를 내서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밝혀준 딸아이가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계속 끌고 가다가 더 늦게 이런 일이 발생했더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어떻든 자신의 정확한 속마음을 용기 있게 말해 준 딸애가 대견스럽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하는 행동을 눈여겨보면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딸애는 어려서부터 곤충이나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 동물원에 가면 제 세상 만나듯이 활개치고 다니며 구경하곤 했다. 관심이 많은 동물 우리 앞에서는 한 시간 이상을 움직이지도 않고 행동을 지켜보기도 했다. 책도 동물이나 과학에 관한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아이를 피아노 앞에 앉게 하고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딸애는 피아노를 그만둔 후 지금까지  건반을 두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피아노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얼마나 질렸으면 피아노가 그토록 싫을까?

딸애는 자신의 적성대로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자신의 꿈을 확장 시키기 위해 미국의 한 대학에서 포스트 박사 코스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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