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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

비밀의 정원

나에게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물론 내 소유는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소유하고 가꾸는 곳도 아니다.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것은 7년 전이다. 지금 살고 있는 한강이 인접한 아파트로 이사를 한 이후이다. 어느 봄날, 화사한 봄볕의 유혹에 이끌려 집을 나선 나는 한강변 산책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시원하게 뚫린 자전거 전용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녘의 향기를 머금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의 페달을 경쾌하게 밟고 있었다. 사이클복에 그대로 드러나는 탄탄한 허벅지와 종다리는 물오른 봄나무처럼 강해 보였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왈츠의 스텝처럼 경쾌했다. 역시 봄 산책은 발걸음이 가볍다. 겨우내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벗어던진 이유만은 아니다..

단상, 에세이 2023.04.10

구본웅, 보고싶은 어머니

구본웅, 푸른 머리의 여인, 캔버스에 오일, 60.4 ×40.4cm, 1940년대, 리움미술관 소장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시진 꺼내 들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구본웅, 여인상, 나무에 오일, 23 × 15cm, 1940년대, 개인 소장 오래전 TV 프로 중에 국군 위문 공연인 우정의 무대가 있었는데, 그리운 어머니(?) 코너 때면, 군인들이 함께 부르던 노래다. 가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미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엄마를 그리는 마음이 간..

미술작품 감상 2023.04.03

런던, 쇼디치(Shoreditch), 예술가의 힘

런던, 쇼디치의 그라피티 런던, 쇼디치의 그라피티 행색이 초라해 천대받던 비렁뱅이가 어느 날 성공하여 때 빼고 광내어 나타났다. 옥수수수염처럼 헝클어진 머리는 단정히 정리되고, 얼굴을 덮었던 지저분한 수염은 말끔히 제거되었다. 때에 절고 악취를 풍기던 넝마 같던 옷은 세련된 정장으로 교체되고 고급스러운 시계와 구두가 품격을 더 했다. 이런 일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침하고 범죄가 득실거리던 빈민가가 환골탈태하여 주목받는 명품 지역으로 변하기도 한다.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룬 런던 중심가 뱅크 지역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쇼디치(Shoreditch)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이다. 싼 집값 때문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한 명 두..

단상, 에세이 2023.04.02

AI이 그린 그림

AI 로봇 소피아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와우 AI 로봇 소피아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 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작품이 AI 가 그린 것이라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가까이 보고 멀리 봐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한낱 기계인 로봇이 이런 그림을 그려 낼 수가 있단 말인가?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로봇이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어딘가 허술한 부분이 있고, 도식적이며 공식적인 요소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찾아낼 수가 없다.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미처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독창성, 창조성이라 하며, 예술 작품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요소인데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잘 갖추고 있다. 얼굴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형체로 창조..

미술작품 감상 2023.03.30

어머니, 꽃, 그리고 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다. 아주 조그만 집이다. 너무 좁아 답답함을 느끼실 공간이다. 벌써 그곳에서 혼자 사시는지가 10년이 넘으셨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가엔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진다. 이른 봄 할미꽃이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피어나기 시작하면, 곧이어 진달래꽃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이기라도 하려는 듯 불길처럼 타오른다. 장마가 물러나면 원추리 꽃이 노랗게 온통 산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해국, 구절초, 용담, 쑥부쟁이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난다. 오솔길을 따라 어머니 집을 찾아갈 때면, 나는 계절에 따라 피어난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허리를 숙이든지 아니면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넌 누굴 보라고 호젓한 곳에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있느냐? 색깔이..

단상, 에세이 2023.03.29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자화상, 그리고 자화상

Frida Kahlo, 사진출처, Artsandcullture, google.com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 그녀는 유난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평생 동안 그녀가 남긴 자화상이 무려 55점이나 된다. 그녀가 남긴 전체 작품수는 198점이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가난 때문에 모델을 사용할 수가 없어 자기 자신을 그렸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가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이유는 모델료의 부담감 때문은 아니지만, 평탄치 못한 불행한 삶이 자화상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프리다 칼로는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고하고. 어려서부터 과학, 고고학, 철학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18세 때 심..

미술작품 감상 2023.03.28

어느 행복한 하루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하늘을 나는 것처럼 가볍고 상쾌함을 느꼈다. 일어나기 직전에 꾸었던 꿈 때문이었다. 분명히 나는 청와대 안에 있었다. 무슨 연유로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TV에서 본 적이 있는 한 회의실이었다. 벽에 걸린 젊은 여류작가의 화려한 추상 작품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드디어 전직 대통령이 들어섰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는 나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어깨를 몇 번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 언젠가 로또 1등 당첨된 사람이 대통령과 악수하는 꿈을 꾸고 행운을 잡은 거라 했었다. 그 후로 나도 그런 꿈을 간절히 바라 왔는데 드디어 성사된 것이다. 덤으로 포옹까지 하고 등까지 다독여 주었으니 나에겐 더 큰 행운을 가져다줄게 확실했다. 복..

단상, 에세이 2023.03.27

앤디 워홀 (Andy Warhol), 복이 덩굴채 굴러오다

Andy Warhol,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사람.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익만 챙기는 사람, 복이 덩굴채 굴러온 사람.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앤디 워홀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기존의 만화 장면들을 대형 화면에 그려서 명예와 부를 거머쥔 화가가 되었고, 앤디 워홀은 사진을 이용한 실크스크린 작업으로 스타 작가가 되고 돈벼락을 맞았으니 말이다. 시대적인 운도 뒤따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의 예술가들이 앞다투어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의 기업들과 자본가들은 유럽에서 온 예술가들을 적극 후원해 뉴욕 곳곳에서 전시회가 끊이질 않았다. 뉴욕은 현대미술의 주요 무대로 부상했지만, 미국에서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술가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미국의..

미술작품 감상 2023.03.26

키스 해링(Keith Haring), 낙서에서 금맥을 캐다

Keith Haring, Andy Mouse, print, 96.8 ×96.8cm 낙서 낙서 낙서 ................... 뉴욕처럼 낙서로 얼룩진 도시가 또 있을까? 유럽의 도시들도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뉴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건물의 벽이나, 전화 부스, 공중 화장실, 기차의 플랫폼은 낙서가 덕지덕지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낙서에서 금맥을 캔 사람이 있다. 키스 해링(Keith Haring),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는 낙서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회화 양식을 탄생시켜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가 되었으니 말이다. Keith Haring, Icons2, print, 1990 세상일은 참 묘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에게 홀대받던 낙서가 예술작품..

카테고리 없음 2023.03.25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꽃이야? 추상화야?

Georgia O'keeffe, Gery Lines with Blue and Yellow, 1923 미국이 낳은 위대한 여류 화가, 20세기 대표적인 꽃의 화가, 한 세기를 풍미한 장수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를 말할 때 따르는 수식어다. 거대하게 확대된 꽃그림으로 잘 알려진 조지아 오키프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유럽의 모더니즘에 흔들리지 않고, 그 어떤 사조와도 연관되지 않는 환상주의 이미지를 추구하여 미국 미술사에 거목으로 우뚝 섰다. 당시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미국 화단에서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Georgia O'keeffe, Jack in the pulpit 4 그녀가 남긴 꽃 그림은 헤일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꽃만 그린 것..

카테고리 없음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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