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에세이

비밀의 정원

두래박 2023. 4. 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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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물론 내 소유는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소유하고 가꾸는 곳도 아니다.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것은 7년 전이다. 지금 살고 있는 한강이 인접한 아파트로 이사를 한 이후이다. 

어느 봄날, 화사한 봄볕의 유혹에 이끌려 집을 나선 나는 한강변 산책로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시원하게 뚫린 자전거 전용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녘의 향기를 머금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의 페달을 경쾌하게 밟고 있었다. 사이클복에 그대로 드러나는 탄탄한 허벅지와 종다리는 물오른 봄나무처럼 강해 보였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왈츠의 스텝처럼 경쾌했다.

역시 봄 산책은 발걸음이 가볍다. 겨우내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벗어던진 이유만은 아니다. 부드러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을 맘껏 몸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게다.

 

 

 

 

 

 

산책로를 따라서 40여분을 걷던 나는 한강변에 넓게 자리 잡은 녹지대를 발견했다. 물론 한강에 놓인 다리를 건널 때 먼발치서 보아왔던 곳이긴 하지만.....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곳을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녹지대 안으로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숱한 나무들이나 풀들은 자생적으로 자라난 것뿐이었다.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나무와 일년생 식물들의 이름을 어느정도 알고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이곳에는 전혀 모르는 것 뿐이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 비밀의 숲에 와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을 비밀의 정원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비밀의 정원을 자주 찾았다. 계절을 가리지도 않았다. 안개가 끼고 봄비가 내리는 날도, 햇빛 쨍쨍한 날도, 장대비가 내리는 날도, 제법 옷깃을 여미게 되는 찬바람이 부는 날에도, 심지어는 하얀 눈이 내린 날에도...

내가 찾아오면 갖가지 꽃들과 나무들, 풀들이 손을 흔들며 맑은 미소로 반겨준다. 겨울에는 마른나무 가지와 갈대가 반겨주지만.

 

나의 비밀의 정원에는 특별한 나무도, 특별한 꽃도, 특별한 풀도 없다. 자연적으로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곳이다. 

아마도 사람들의 손에 의해 가꾸어지는 정원이라면 이곳에 있는 나무나 풀, 꽃들은 아예 발붙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쓸모없는 나무, 쓸모없는 잡초라고 주인에 의해 모두 제거될 테니까.

 

 

 

 

 

 

비밀의 정원을 산책할 때면 기분이 좋다.

헤일 수 없이 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재잘거리고, 

세찬 바람에는 서로 버팀목이 되어 손을 잡아주고, 

장대비가 내리면 큰 잎사귀의 나무나 풀들이 우산이 되어 작은 것들을 보듬어주고, 

햇빛 강한 날에는 그늘을 만들어 보호해 주고,

서로 좁다고 투덜대거나 불평 없이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어우러 사는 모습이...... 

 

사람들은 왜 서로 어울리지 못할까?

사람들은 왜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상처를 주는 걸까?

사람들은 왜 자신의 영역을 넓게 넓게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는 걸까?

사람들은 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별 지어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자신만 화려한 주인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모든 나무와 풀, 꽃들이 주인공이 되는 곳.

서로 어울리며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

그래서 비밀의 정원을 산책하는 것이 좋다.

바로 이곳이 내가 걷고 싶은 꽃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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