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애국심
여행을 하게 되면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숙소 문제이다.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여행할 경우, 장기간일 때는 민박이나 룸셰어를 하지만, 단기일 경우엔 되도록이면 비싼 호텔을 피한다. 잠시 잠만 잘뿐인데 별 다섯 짜리 면 뭐 하고, 네 개 짜려면 뭐 하나? 세 개나 두 개, 아니, 한 개짜리도 피곤한 몸을 회복시키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좋은 호텔에 묵고 비싼 요금을 지불하면, 왠지 돈을 도둑맞은 것처럼 아까운 생각에, 여행 내내 신경이 쓰여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차라리 절약한 그 돈으로 음식을 잘 먹고,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볼 경비로 전환하는 것이 천만번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물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호텔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지고, 깨끗한 호텔을 찾게 되지만 말이다.
난 호텔을 이용하게 되면 꼭 하는 게 한가지 있다. 호텔을 나오면서 묵었던 방에 간단한 편지와 동전 몇 닢을 남기는 것이다. 편지라야 간단한 내용이다. 내가 머무는 동안 항상 깨끗이 청소해 주어서 쾌적하게 잘 보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편지 말미에는 내 이름을 대신하여 한 한국인이라고 써 놓는다. 한국인들이 예의 바르고 하찮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국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여행이 자유화되고 초창기에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일부 국가의 호텔에서는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을 내걸기도 했다. 무례한 행동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호텔 복도를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밤늦도록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술판을 벌이고, 밤새워 고스톱 치느라 소란 피우고, 입실 인원이 두 명이었는데 나중에 보면 3-4명으로 늘어나 있고, 아침 먹으러 식당에 가서는 과일이며 빵을 가방이나 비닐봉지에 싸가지고 나오고......
지금이야 여행 예절이 많이 달라져 이런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또 다른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 같다.
피라미 한 마리가 물을 흐려 놓는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 한 명 한 명의 작은 힘으로 얼마든지 깨끗한 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호텔에서 방을 청소해 준 사람에게 쓰는 편지, 동전 몇 닢 놓는 것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2-3분만 할애하면 충분히 감사하는 마음을 글로 남길 수가 있고, 동전 몇 닢은 커피 한 잔만 덜 마시면 된다. 이 작은 행동이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작은 애국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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