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 만한 곳

어제는 잊어도 좋아(영국, 세븐 시스터즈 파크에서)

두래박 2023. 9. 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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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잊어도 좋아
(영국, 세븐 시스터즈 파크에서)



어제는 잊으라고 속삭여 줄 것 같은 곳이 있다.
동굴 석순처럼 더디게 자라는 욕심도 멎게 해줄 것 같은 곳이 있다.
배신감, 상실감으로 가슴 깊숙이 푸르게 응어리진 덩어리를 어루만져 풀어 줄 것 같은 곳이 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도 훌훌 털어내게 해 줄 것 같은 곳이 있다.

영국의 남쪽 해안 도시인 브라이튼과 이스트 본을 연결하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중간 지점에 세븐 시스터즈 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컨트리 파크 라고도 불린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면 한없이 너른 목초지와 호수, 개울, 그리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높은 언덕과 아스라이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 같다.
너른 목초지에는 양과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것들의 관심사는 오직 맛있는 풀 뿐이라는 듯 머리를 풀밭에 박고 뗄 줄을 모른다.

목초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닷가로 갈 수 있는 평평한 길과 언덕으로 오르는 길들을 만나게 된다. 평지가 대부분인 영국에서 그 언덕은 꽤 높다고 할 수 있으나 오르기에 무리는 없다. 언덕에 피어있는 갖가지 꽃들과 바닷바람에 물결치는 수풀, 떼지어 나르는 새떼들, 파란 하늘과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걷다 보면 어느덧 언덕에 올라와 있음을 알게 된다. 언덕은 계속 이어진다. 내리막 길과 오르막 길이 반복되어 일곱 개로 형성 되어있다. 해안 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하얀색의 절벽이다. 하얀 절벽? 상식 밖이다.

언덕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바다를 향해 서 있으면, 눈 아래로 확 트인 바다와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 바다의 향기를 안고 날아오는 강한 바람이 모든 잡념과 괴로움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태양, 구름, 하늘, 풀, 맑은 공기, 바람, 햇빛, 작은 꽃들, 바다 이런 자연이 주는 감동은 예술품이나 건축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자연이 이토록 큰 행복감과 감동을 안겨주리라고는 미쳐 몰랐었다.

세븐 시스터즈 파크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해안을 따라 돌출 된 일곱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바람이 심한 날에는 여자들이 봉우리마다 올라가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려 간 남편들의 무사귀환을 빌며 애타게 기다린 데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바람이 엄청나다. 키가 큰 나무는 자랄 수도 없고, 간혹 언덕에 한 두 그루 서 있는 작달막한 나무도 기역자로 기형을 만들어 놓았다. 그토록 심한 바다 바람은 얼마나 많은 배들을 바다에 침몰시켰을까? 남편이 고기 잡으러 바다로 나가면 여자들은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갑자기 심한 바람이 불면 그녀들의 마음 속 풍랑은 몇 배 심했을 것이다. 집안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폭풍우 몰아치는 언덕을 머리와 옷자락을 흩날리며 울며 불며 오르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슬픈 사연을 지닌 곳이지만, 눈부신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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