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ith Haring, Andy Mouse, print, 96.8 ×96.8cm
낙서
낙서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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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처럼 낙서로 얼룩진 도시가 또 있을까?
유럽의 도시들도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뉴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건물의 벽이나, 전화 부스, 공중 화장실, 기차의 플랫폼은 낙서가 덕지덕지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낙서에서 금맥을 캔 사람이 있다.
키스 해링(Keith Haring),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는 낙서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회화 양식을 탄생시켜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가 되었으니 말이다.
Keith Haring, Icons2, print, 1990
세상일은 참 묘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에게 홀대받던 낙서가 예술작품의 한 분야로 꽃을 피우게 될 줄이야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키스 해링이 누구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 머리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여주면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어 이 그림 내 티셔츠에 있는 그림이네.
이건 내 팬티에 있는 그림이야.
이 그림은 내 모자에 있는 것인데.
이 그림은 내 운동화에 있는 것이고,
내 노트에 이 그림이 있어.
이 그림은 공익 포스터에서 본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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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마디쯤 보탤 것이다.
간결한 선과 색채의 그의 작품은 다양하게 상품화되어 아이부터 어른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Keith Haring, USA 19-82, print, 1982
키스 해링
팝 아티스트,
그라피티 아티스트.
낙서화 (그라피티)를 예술로 승화시켜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키스 해링,
강렬한 원색으로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며 강렬하게 표현한 키스 해링,
그의 작품을 보며 사람들은
귀엽다
재밌다.
유아적이다.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음악 앨범의 커버 디자인과 포스터 작업을 통해 에이즈 예방, 동성애자 인권, 인종 차별, 마약, 전쟁, 폭력 및 환경보호 등 세계와 사회의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즐기며 구입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실크스크린으로 작품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자신의 개인숍에서 저가로 판매하기도 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우리 곁을 떠난 그는 어떤 거장의 작품보다 많이 알려졌고 사랑받고 있지만, 사실 그가 작업을 한 것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Keith Haring, Radiant Baby from Icons series, print, 1990